유교적 가르침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孝), 임금을 위해 충성하라(忠)고 한다. 이를 위해 어른을 공경하고, 입신양명해야 한다는 것은 덤이다. 어찌보면 이런 사상 또는 처세술은 씨족을 멸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고, 농사짓기만 하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과거에는 온당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하더라도 숲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변했고,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오늘날에는 이 말을 따라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사회의 부와 권력은 특권층과 노인층으로 집중되고 있는데, 이 현상은 젊은이가 우리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미 그 극단의 모습을 보이는 사회가 일본이다. 일본은 대부분의 부를 60 세 이상의 노인이 갖고 있고, 이들은 부를 소비하기를 지독히도 꺼리기 때문에 지난 20 년간 불황에 허덕여왔고, 앞으로도 언제까지 불황을 유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일본 정부도 이를 해결하고자 여러 방안을 마련해 봤지만, 그 결과는 정부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됐을 뿐, 효과는 전혀 없었다.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원할 방법도 없다는 아이러니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런 일본의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재현된 것이 '88만원 세대'다.
그렇다면 젊은이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데, 이 책 『분노하라』는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간단하게 현재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분석한 후에, 이를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흔세 살의 레지스탕스인 스테판 에셀은 이 책에서 프랑스의 오늘날 모습은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라고 분석한다. (10 쪽 10줄 인용)
이런 문제를 극복할 방법으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에너지원, 지하자원, 보험회사, 거대 은행들-을 국가로 복귀시키는 것', '경제계·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노동계가 창출한 부를 정당하게 분배하는 일을 금권(金權)보다 중시' 같은 것이었다. (11 쪽 인용) 그런데 이 내용은 사실 앞으로 추구해야 할 국가 모습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를 재건하는데 기본 가치관으로 적용됐던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아흔세 살의 레지스탕스가 젊었을 때 이끌었던 내용이었고, 살기 좋았던 나라를 만들었을 때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흔세 살의 레지스탕스 눈으로 바라본 오늘날은 '언론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고, 어떤 차별도 없이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이념이 2008 년 개혁으로 사라졌고, 프랑스 교사들은 2008 년에 이 개혁이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어서 반대하며 불복종했다고 전한다.(12 쪽 인용)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에 대해 '그러니까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레지스탕스가 사회적으로 얻은 성과의 토대 그 자체인 것이다.'라며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12 쪽 인용)
이 아이러니를 이해하려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살펴보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 땅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해서 설명하며 정직의 기치는 진보가 내걸었고, 자신들이 꿈꾸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정직이 통하는 사회는 보수주의자에게 더 좋은 사회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한 마디면 모든 것이 통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이 말은 89년 5공 청문회 이후의 모든 청문회에서 면죄부로 적용됐던 것을 생각한다면 정확한 분석인 것 같다.)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알제리의 민주화운동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재자는 일부 시민을 알바로 고용하여 자기들 본거지에 계속 머물게 하며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는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가 분석한 프랑스의 모습은 다른 유럽 국가, 일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이민자가 많지 않아서 이민자에 대한 분석은 제외되지만, 나머지는 모두 해당된다. 어쩌면 젊은이와 상관없을 이런 문제들이 결국 젊은이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자식이 결혼도 못한다며 애닯는 부모가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신들이 어떤 짓을 자식에게 해서 그들이 결혼도 안 하고 버티고 있는지....)
결국 이 책이 하는 이야기는 제목 '분노하라'가 잘 말해주고 있다. 젊은이라면 세상을 살피고, 온전하지 못한 세상의 모습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민족이 자신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예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다'(30 쪽 인용)며 전에도 이랬었으니까 앞으로는 잘 될 것이라는 기대는 집어던지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나라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친일-군부독재 세력은 50여 년을 집권하다가 IMF 사태를 일으킨 뒤 권력을 상실하지만, 이후 민중이 최악의 선택, 즉 MB를 대통령으로 뽑으면서 '민중은 멍청하다'는 것을 증명했었던 것이다.
스테판 에셀은 테러리즘은 안 된다면서도, 모든 것을 다 갖춘 강한 적을 상대로 하는 민중은 꼭 비폭력적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30 쪽 인용) 책을 끝내면서 비폭력과 평화적 봉기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습적으로 시위하는 오늘날의 프랑스 모습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시위하는 프랑스를 민주화가 덜 된 나라라고 평가하는 사람들 또한 없다는 점은 시위와 민주화와는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머리말부터 본문의 주석까지 모두 합쳐 35 쪽밖에 안 되는 짧은 책이다. A4용지로는 15장 정도로, 일반적으로 블로그에 올라가는 비교적 긴 글 정도의 수준이다. 책이 너무 얇다고 생각했는지 이런저런 글들을 뒤에 붙여 모두 87 쪽으로 분량을 늘렸지만, 본문만 읽어도 충분히 좋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렵다. 처음부터 이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면 나도 이 책을 끝까지 못 읽었을지도 모르겠고, 사실은 지금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을 다른 두 권과 묶어 시리즈처럼 읽으면 좀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론편 :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 김영사 (2010.05.24)
- 적용편 :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엄기호 지음, 푸른숲 (2010.10.15)
- 실천편 : 『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 지음, 돌베개 (2011.06.07)
ps. 실제로 이 책들은 모두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책이 나온 시간도 공교롭게도 시간 순이다. 나는 앞의 책이 없었으면 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분노하라』는 앞의 책이 나오지 않았으면 출간조차 되지 않았을 거다.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드는 이유는 이런 짧은 글을 출간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판관행에 맞춰 생각한다면 짧으나 좋은 원고는 200 쪽 정도까지 분량을 채우라고 저자에게 요청(?)하거나 출간을 포기한다. 책값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짧은 글 그대로 출간하여 사람들이 분량에 부담을 덜 가질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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