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한 분야만 잘 하도록 시키는 것이 좋은가, 전부 다 잘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다양한 의견이 등장하는 분야죠. 결론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 천재들의 시대
우리가 천재들의 시대라고 불리는 시간대는 크게 두 곳인데, 첫째는 르네상스 직후의 유럽, 둘째는 20세기 초의 유럽입니다. (분명 다른 세계는 빠져있는 이야기이며, 서양 중심의 이야기지만, 다른 세계에는 이런 식의 논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논의를 바탕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 두 시간의 공통점이라면 새로운 변화가 시작하던 때라는 것입니다. 잔잔한 강물에서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는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패러다임이 고정된 세계에서는 고정관념 덕분에 유별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그래서 천재가 많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의 천재들의 시대는 세계적인 고정관념이 충돌하는 시간이었고, 그 덕분에 재미있는 생각과 발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사회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는 좋은데 크게 이루지 못한다고요? 개개인의 능력은 좋지만 협동이 안 된다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천재는 많지만 나라꼴이 맨날 요모냥 요꼴이라고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패러다임이 고정되어버린 비극적인 사회입니다. 남과 북, 따라서 빨갱이 vs 보수꼴통 양측에 서지 않으면 양쪽으로부터 비난받는 사회입니다. 이렇게 사상과 생각이 억압받는 사회에서 천재가 나온다면 아마 미쳐버리겠죠.
2.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가능한가?
중국 고사인 천리마 이야기에서노 나오듯이, 천리마는 항상,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만,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천리마가 능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늙어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재능을 최대한 알아보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2007 년의 Pixar 영화 <라따뚜이>에서 젊은 요리사는 말하죠.
"Anyone can cook."
누구든 요리할 수 있다는 말은 듣는이가 기분좋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비평가(요리평론가) '안톤 이고'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요리는 재능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요리사를 거침없이 공격하죠.
영화 후반부에 안톤 이고는 수필을 하나 남기고, 비평가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누구든 요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신이 요리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즉, 아이를 볼 때 그 아이의 재능이 어떤지를 알아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능을 키워주기 어렵다는 이유가 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잘하는 것은 대개 다른 사람 재능도 잘 파악하고 가르칠 수가 있는 반면, 못하는 것은 잘 못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은 되도록 많은 선생을 만나봐야 자기 재능을 제대로 봐줄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반대급부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봐준 선생은 학생의 또다른 재능을 알아보기 쉬우니까.... 오랜 시간동안 접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죠.)
3. 이상훈 vs 이세돌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가르치기를 원했던 어린이 이상훈. 그는 재능있는 유망주였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바둑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던 어린이 이세돌. 그는 바둑을 배우기 위해 아버지가 바둑두는 것을 어께 넘어로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이 두 어린이는 누가 바둑을 가르쳐주었건, 가르쳐주지 않았건 모두 열 살이 되기 전에 바둑을 시작했고, 10대 중반에 프로바둑기사가 됐습니다. 또한 프로바둑기사가 된 뒤에도 기대받는 유망주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렸을 때부터 집중교육을 받았던 이상훈보다 어께 너머로 배워야 했던 이세돌이 바둑을 더 잘 두게 됐죠. 이세돌은 이창호와 함께 세계 투톱을 이룬 실력자입니다. 그의 바둑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존의 바둑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재미있는 수를 수시로 둡니다. 바둑 외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이세돌이 유리하다고 평하고 있던 바둑을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마자 돌던지기도(기권하기도) 하고, 한국기원의 승단대국을 안 두고 일반대회에만 나가겠다며, 승단대국을 포기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자 한국기원에 프로기사 사직서를 내버리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바둑판을 짊어지고 피난다닌 조남철 선생이 만들어 50여 년을 유지해온 한국기원의 승단대국 시스템은 그렇게 이세돌에 의해 무너졌고, 지금은 대회 참가 성적에 따라 승단하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실력은 좋지만 저단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어린 기사들이 순식간에 9단까지 올라가게 됐고, 할아버지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프로바둑기사 9단 타이틀을 성년도 되지 못한 애송이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애송이는 단순히 나이 어리다는 의미에서 쓴 거예요. 딴지 사절)
한편 이상훈은 어떻습니까? 이상훈은 실력, 균형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일류 프로기사입니다. 그런데 항상 비슷한 바둑만 두는 편이고, 이세돌처럼 혁신을 이뤄내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이세돌과 이상훈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재능? 교육환경? 아니면 그 이외의 어디에서?
4. 하나만 가르칠 것인가, 전부 가르칠 것인가?
문제는 이것입니다.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잘하는 한 과목만 가르칠 것인가?
전부를 완벽하게 잘하는 학생은 당연히 전교 1 등을 하겠죠. 꼭 1 등을 하는 학생만 지칭하지 않더라도, 전교 20 등 정도 안에 드는 학생이라면 인정해줄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학생은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할까요? 의사? 변호사? 기본교육과정은 정말 능력이 뛰어나기만 해도 성취할 수 있지만, 단순히 암기력만 뛰어나도 성취할 수 있죠. 의사와 변호사가 인기인 것은 단순히 암기력만 뛰어난 학생이었어도 계속 공부하기만 하면 끝까지 갈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능력이 뛰어난 학생도 성공할테니까, 실패확률이 매우 낮은 분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부를 잘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별로 없죠? 당연히 몇 백 명 중 열 몇 명 정도잖아요! 더군다나 이런 학생들은 세부전공으로 가면 그냥저냥 그런 학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학을 다녀보신 여러분은 다 아시다시피, 대학공부는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지, 이것저것 잡탕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 하나만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까요? 뭐 저도 이 경우에 포함되겠습니다만, 하나만 잘하는 학생은 일단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쉽게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졸업한 뒤, 전공지식을 어디에 써먹을까요? 사실 대학(뭐 넉넉히 잡아서 석사, 박사학위 수여자까지 포함해 생각해 봅시다.) 졸업했다고 그 전공지식을 직접 써먹기는 힘듭니다. 지식은 써먹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다른 것과 합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한 예는 들기 어렵지 않지만, 여러분이 잘 아는 웹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살펴봅시다. 우리나라에서 웹디자이너의 일반적인 연봉은 초임이 1200~1300, 높아도 2000 정도에 머뭅니다. 이보다 더 높아지면 개인일 시작해야죠. 왜냐하면 회사에서는 웹디자인에 더이상의 돈을 지출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프리랜서로 독립해서 여러 회사에서 일을 받아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웹디자이너 중에도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십니까?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 것일까요? 예상외로 그런 사람은 웹사이트를 이쁘고 귀엽게, 또는 멋지고 산뜻하게 꾸미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걸까요? 웹사이트를 직접 만드는 건 싼 웹디자이너 시키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니 신경쓰지 않고, 그 사람은 사용자의 철학을 고민해 동선을 설계하고, 웹사이트의 이전과 앞으로 고쳐질 모습, 다른 회사 서비스까지 고려해서 UX, 항상성, 통일성, 지속성 등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즉 그런 사람들은 웹디자인 하나만 (공부)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아니, 오히려 그런 건 잘 못 할 겁니다.^^;
결국 하나를 가르치는 것도 옳고, 몽땅 다 가르치는 것도 맞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이 배운 것을 어떻게 조합해 내든 그건 학생의 재능과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강요를 하면 안 됩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과목 정도는 누구나 잘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교육처럼 모든 과목에서 100 점을 받아야 하는 교육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학생이 점수에 연연하다가 자살하는 미친 대한민국 환경..... 때론 환경만 탓할 수 없는 자살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학생 자살은 학부모, 학교, 사회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특히 학부모는 책임이 가장 큽니다. 공부하다보면 빵 점을 받을 수도 있고, 백 점을 받을 수도 있는 거지요. 점수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재능의 차이도 있을 뿐더러, 성장 속도도 차이를 보이게 마련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과 쪽의 수학-과학 분야 재능은 남들보다 몇 년 앞서 발달한 반면, 문과 쪽의 인문학-언어학 쪽은 몇 년 늦게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성적표를 보면 점수가 절반씩 나뉘어서 극단적으로 갈렸지요. 수학-과학 쪽은 거의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최상위권에 속한 반면, 인문학-언어학 쪽은 아무리 공부해도 중하위권이었죠. (재수시절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그때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학생이 선택한 특정 과목만 우수하게 졸업하면 그것으로 됐다고 보고, 학생이 선택하지 않은 과목은 pass(통과) 여부만 기록하도록 하는 것이 제가 얻은 결론입니다. 대부분의 과목은 반드시 공부해야 하고, 그것이 학생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당장의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5. '반드시 XX는 가르쳐야 한다'는 말의 의미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 볼께요.
학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뭔가를 꼭 가르쳐야 한다면서 사교육으로 내몹니다. 제가 본 학생 중에는 10 살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학원 13 곳에 다니는 걸 본 적이 있고, 고3 학생이 (정확히 다는 몰라도 제가 아는 것만) 8 개의 사교육을 받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논리는 어디서 온 걸까요?
첫 번째로 그런 논리가 나타나는 것은 사교육계의 불안 자극 마케팅에 따른 것이라는 건 잘 아시죠? 그렇습니다. 자식교육에 일말의 불안감도 허용하지 않는 여자 습성을 적절히 이용한 마케팅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거죠. 심지어는 이런 불안 자극 마케팅을 호주, 미국 등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는 한인들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당장 눈 앞에 효과가 보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혹 할 수밖에 없는 불안 자극 마케닝은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그런 논리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가진 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가진 자는 재력과 권력 등을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그들은 요즘에는 '영어'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토익/토플 시험이 이렇게 많이 치뤄지고, 또 영향력이 큰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런 것이 대기업 등이 고의로 조장하는 바가 큽니다. 그러면 왜 교육에서 이런 흐름을 만들려고 할까요? 제대로 된 인재, 즉 개천에서 용이 태어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고대에도 있었습니다.
영어를 배워야만 한다는 흐름은 갖은 자들이 손쉽게 장벽을 만들고, 보통 사람들이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언어의 장벽(쉽게 말해서 모국어와 제2외국어 차이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네이티브 스피커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갖은자들은 다릅니다. 그냥 외국에 나가서 몇 년 살다 오면 되니까요. 외국에 살다 귀국한 자녀들을 왜 대학에서 특채하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만약 전 국민이 영어를 잘하게 되면 더이상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없어질까요? 아닙니다. 뭔가 다른 것이 생길 겁니다. 그것은 돈이 더 많이 들고, 배우기 더 어려운 것일 겁니다. (→ 물론 요즘엔 한술 더 떠서 스펙놀이를 하곤 합니다만...^^;)
아무튼 저런 명제로 나타나는 내용은 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배포하는 것이라고 알아두시면 됩니다.
知之者는 不如好知者요,
好知者는 不如樂知者라.
이게 .............. 이상적으로는 실천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죠.
세 줄 요약합니다.
최소한 수준까지는 모든 것을 배워둬야 합니다. 그러나 완벽할 필요도 잘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두 분야는 잘 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상관은 없고, 이건 누구보다 잘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몇 분야를 잘 해서 남과 구별되는 특화를 시켜야 합니다.
ps. 사실 이세돌은 이상훈의 동생입니다. 이세돌은 아버지가 형 이상훈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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