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목요일

말 못하는 사람과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만났을 때

말을 잘 못하는 사람한테

"저는 남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라는 말을 하면 안 되나보다... 잘 못 듣는 이유가 자기한테 있다는 걸 모르니 말이다....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의 아주 가까운 주위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닐까. 그리고 그보다는 좀 먼 주위에는 말을 잘 못 듣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닐까. 그래서 말을 엉망으로 배우고는, 그게 엉망인 걸 모르게 되고, 결국 자기 말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아주 가까운 주위에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 같다. 그보다는 좀 먼 주위에도 말을 아주 못하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듯 싶다. 그래서 듣는 말의 수준이 엄청 올라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문법적 오류이거나, 논리적 오류이거나, 감정만 앞선다거나 하여) 엉터리인 말이 들려오면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서 괴로워한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은 말하기와 쓰기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말은 혼자서 독학하는 게 힘들다.

문제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과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만나 대화할 때다. 두 사람의 대화는 산으로 가고, 단절이나 싸움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사람들이 손잡이가 없는 뜨거운 국그릇을 잡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손가락을 벌려서 국그릇 꼭대기를 살짝 잡았다가 놓는 방법이다. 둘째는 손가락을 모아서 국그릇 한쪽만 잡는 방법이다.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국을 쏟을 가능성도 별로 없고, 국그릇 안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으며, 국에 닿지 않아서 덜 뜨거운 첫째 방법이 분명히 더 낫다. 그러나 어렸을 때 부모가 두 번째 방법을 쓴 사람이라면 둘째 방법을 쓸 수도 있다. 말하기와 마찬가지로 국그릇을 잡는 행동도 어렸을 때 보고 배운 습관을 늙어죽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 방법이 문제가 있다고 말해줘도 고치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첫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둘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제공하는 상을 받을 때 일어난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둘째 방법으로 그릇을 나르는 걸 보기도 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손가락이 담겼던 국을 먹고 싶겠는가?)



ps.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에서 거리를 나타낸 말은 공간적인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