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자체로 감상문이자 분석글이자 스포일러다.
원작 : 박범신 지음
영화 별점 : 8.7~9.0/10
그의 옆을 지키는 건 대학 강의에서 만난 소설가 제자 하나. 이놈은 서 씨다. 그러나 그 제자란 놈은 아무리 가르쳐도 하나도 알아먹지 못한다. 이제 더이상 뭘 해주기도 짜증난다. 그냥 심심하니까, 집안일 시켜야 하니까 데리고 있을 뿐이다.
어느날, 어떤 계집아이가 내 등나무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다. 뭐지? 심심한 일상 속에 뛰어든 계집아이. 누군지 묻자 대뜸 '은교'라는 이름만 남겨두고서, 의문이 풀어지기도 전에 하양나비가 그렇듯 담장 너머로 훨훨 날아가 버린다.
이대로 영영 끝일줄 알았던 은교와의 인연은 은교가 시인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이어진다. 똑같던 나날이 조금씩 달라지고......아니 엄청나게 달라지고, 이 변화는 아무것도 알아먹지 못하던 공대생 출신마져도 눈치를 챌 정도다. 석목 같은 공대생 제자는 시인의 변화가 뭔지 모르고 은교와 떼어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이 빨랐다.
시인과 은교가 점점 가까워져서 사적인 것까지 털어놓고, 급기야 보통 애인 사이에서나 털어놓을만한 것까지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고, 시인은 은교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파생되는 감정을 단편소설 「은교」로 완성한다.
이후 한동안 진행되는 서 소설가, 시인, 은교의 밀고 당기기...... 그 과정에서 시인은 서 소설가가 자기 소설 「은교」를 춤쳐다가 문학잡지에 발표한 것을 알게 되고, 은교는 자기의 적나라한 모습이 나오는 단편소설이 쓰여진 것을 알게 된다. 한바탕 소동.....
그러나 비극은 은교의 착각에서 시작된다. 「은교」로 인한 자신의 울림이 소설을 발표한 서 작가에게서 전해졌다고 믿은 것이다. 이 둘은 한 소용돌이 속에서 섞이게 된다. 끝까지 주위를 맴도는 서 작가를 내치지 못하던 시인은 공대생 마인드와 다름 없이 격분한다. 결국 시인과 서 작가는 서로에 대해 폭발한다. 시인은 서 작가에게 강력한 마지막 경고를 남기는 대신 은교의 사랑을 훔쳐간 것을 용서하는데, 서 작가는 이 폭발을 감당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모두가 떠난 시인의 집. 눈이 쌓이고....
시인의 집에는 사람의 흔적도 없다.
은교가 별의 의미를 깨달을만큼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은교가 별의 의미를 깨달을만큼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게 있잖아요. 할아버지가 예기를 해줘도.... 다른 사람이 대신 쓸 수가 없는 거더라구요. 공대생이, 별이 다 똑같은 별인 줄 아는 공대생이 어떻게 알아? 은교**는 할아버지 거잖아요."
이렇게.... 「은교」가 시인이 털어놓지 못한 사랑의 고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노인과 서 작가 사이의 풍랑 속에 이미 기회는 떠나간 후....... 확인은 그냥 확인만으로 끝난다.
노인의 집을 나서는 은교의 뒷모습에서, 자기 길을 걷기 시작하는 은교가 보인다.
노인이 해줄 수 있는 말이래봐야 "잘가라 은교야." 뿐. 앞으로는 은교의 길이 있을 뿐, 노인의 길은 없다. 그래서.... 영어 제목은 <A Muse>, 즉 문학의 여신이다.
이 영화를 볼 때는 두 가지 대사를 음미해 볼만 했다.
"저는요 이제 더이상 껍데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나 서지우요 저,,,,,,, 저는 성공할 거예요, 선생님."
서 작가의 이 술주정은, 시인이 만들어 놓은 인기란 거품 위에 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설명해준다. 어찌 보면 곧 거품이 꺼질 것이란 걸 암시해준다.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지 아세요? 외..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래요, 나두."
이 말은 서 작가가 영화 초반에 한 말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시인과 서 작가의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의 고뇌를 뜻이기도 한다. 사실 은교가 시인에게 끌린 건 영화가 막 시작되면서였다. 시인이 자기를 가족처럼 대해줬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수에 끌리는 초심자 마음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등장인물=사람'으로 놓고 보면 여러 의미를 놓치게 되는 것 같다. 그보다는 '등장인물=시대관'으로 놓고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 생각된다. 책으로 읽으면 좀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ps.
이 영화 <은교>는 마케팅이 적이었다!
ps.
만약 내가 글을 써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별은 별이라고 공대생 마인드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이 없다면서 나쁜 영화라고 했을 것 같다.
** :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은교 자신을 뜻하기도 하고, 「은교」란 단편소설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작가가 중의법을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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