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얼마 전에 올린 '앨범관리' 리뷰에 대한 후일담

사진을 분류하고 메모할 수 있는 앱이 필요해서 slrclub 캐논포럼에 질문을 올렸다. 그러자 세 명이 답을 해 줬는데, 두 명은 iphoto를 추천해 주셨고, 한 명은 '앨범관리'를 추천해 주셨다. 그런데 '앨범관리'는 그동안 쓰지는 않았지만, 마침 예전에 다운받아 놓았던 거라서 3 시간 정도 시험해 봤다. 시험이래봤자  (500 MB가 조금 넘는 용량의) 내 사진 1400 장 정도를 올리고, 사진을 넘겨가며 기본적인 기능을 테스트하여 쓸모 있는지 완성도를 가늠해보는 것이었다.

사용해본 결과는 아쉽게도 많은 사진을 취급하기에 부적합하고, 한 번 올린 뒤에 나중에 갱신할 때 엄청난 불편을 불러올 UX 때문에 사용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앨범관리'에 대한 리뷰를 짧게 올리고서, 리뷰의 간단한 요약과 함께 포스트 링크를 slrclub에 남겼다. 내게 추천해준 분이 계신 걸 봐서는, slrclub에 앨범관리에 대해 고려하시는 분도 꽤 있으시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하나 붙었다.



캡쳐에 써있듯이, 내용이 부실하다고 한다. 참고로 댓글을 달아주신 PETERPAN이란 분은 slrclub 캐논포럼에서 (활동은 조금밖에 안 하시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맘먹고 리뷰를 제대로 쓰면 엄청 긴 리뷰가 작성된다는 걸 아실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운영할 때, 항상 너무 길고 자세한 글을 문제점으로 지적받았었다. 그때 내가 썼던 글을 읽어보시고 싶으신 분께는 무려 12 년 전인 2000 년에 썼던 마이크로닉스 TH-1200 컴퓨터 케이스 리뷰를 추천해 드린다. 이 리뷰로 말할 거 같으면, 당시에 리뷰전문사이트에 올렸더니 DB 용량 초과 때문에 뒷부분이 잘려서, 결국 그 사이트 DB를 개편하게 만든 리뷰 중 한 편이다.) 그러나 '앨범관리' 앱에 대해 리뷰를 짧게 작성한 이유는 앱 개발자가 혹시나 검색해서 내 리뷰를 본다면 개선할 방향을 알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사용자가 본다면 사용할지 결정할 때 판단 근거로 유용하길 바랬기 때문이다.



보통 slrclub에 올라오는 사용기는 꽤나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빛의 "회절" 현상과 사진의 화질에 대하여' 같은 강좌는, 물론 slrclub 회원들이 알면 좋은 내용이지만, 물리학과를 나온 나조차도 이해하기 버거운 내용이 나열된다.(물론 나야 이전부터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강좌에 찬양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댓글을 단 사람들 중에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솔직히 말하면 글에 틀린 부분도 눈에 띄는 걸 보면, 글 쓴 분도 충분히 이해하고 쓴 것 같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격인 강좌다. 대중에게 이런 글은 필요없다.
slrclub에서 이런 리뷰나 강좌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렌즈에 대한 리뷰를 보면 한결같이 각종 그래프와 수치로 도배를 하고 있다. 근데 그 그래프와 수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slrclub의 각 포럼이나 자유게시판에 빈번히 올라오는 질문이 "뭔가 하려는데 X 렌즈와 Y 렌즈 중에 어떤 게 더 나아요?" 같은 것이다. 이런 질문은 리뷰에 나와있는 그래프를 볼 줄만 안다면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강좌나 리뷰가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뜻이다. 정작 봐야 할 대중과는 격리되어 있으니까....


내가 만약 '앨범관리'란 앱에 대해서 용량, 속도, 우리나라 사용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UI, 실제로 중요한 UX, 용량별로 일어나는 현상, 각 기능 등등 온갖 것을 모조리 이야기한다면 글은 엄청나게 길어지고, PETERPAN 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리뷰 조건에 부합하겠지만, 그걸 읽고 쓸지 말지 판단하려는 분들은 엄청나게 지루한 글을 읽고, 핵심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게 좋은가?




이런 것에 대해서 예전에 한번 아쉬움과 경고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때니까 대충 10 년도 더 전으로,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기도 전이고, slrclub이 생겨났을 때쯤이었을 거다. 그때는 거의 모든 분야의 사용기가 text에서 Image로 바뀌기 시작할 때였다. 내가 예상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사용기 작성이 전문화되어 힘들어지면 대중의 사용기(중에 주목받는 사용기)는 줄어들 것이다.
  2. 사용기에 쓸모없는 정보가 많이 추가되는 반면, 막상 대중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누락될 것이다.
  3. 사용기는 대중에게서 격리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예상은 대충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리뷰를 쓰려고 그래픽 툴 쓰는 걸 배우지 않았고, 지금도 최소한으로만 쓰고 있다. (참고로 나는 포토샵 3.0을 어설프게나마 마스터했었다.) 이젠 그림을 다뤄야 하는 경우에 거의 항상 그림판을 쓰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내가 부실한 사용기를 쓰고, 이 블로그를 홍보하려고 slrclub에 사용기 링크를 남겼는가? 난 솔직히 PETERPAN 님한테 '좋은 사용기'에 대한 개념을 좀 바꾸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이런 개념은 권해서 될 것도 아니고, 각자의 사정에 맞춰 생각하는 거니까.... 그럴 수는 없는 거지만...)

ps. 이 글은 PETERPAN 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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